1980년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영화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우리는 홍콩영화를 말할 것이다.
1950년부터 본격적으로 영화산업이 시작된 홍콩은 지금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홍콩에서 조차 자체적으로 영화들에 투자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몰락했다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전성기가 정말 위대했고 아직도 80년대 영웅본색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그만큼 홍콩영화의 쇠퇴는 다른 나라들한테도 큰 이슈거리가 되었습니다.
1. 홍콩영화의 시작
홍콩영화의 역사는 억압을 피해 도망친 사람들의 모임이 되었다가 이후 다시 중국에 합병되면서 쇠퇴의 길을 맞이하게 됩니다. 태평양전쟁, 2차세계대전이라는 큰 사건 이후 이념의 분리와 냉전이 찾아왔고 영국령에 포함되어 있던 홍콩은 자유를 추구하는 중화권 사람들에게 있어서 좋은 무대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1997년 반환이 확정되면서 동시에 홍콩영화도 쇠퇴의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1950년대 중국의 공산화, 대만의 공산화로 인하여 문화의 자유를 추구하던 사람들에게 홍콩은 적합한 무대였습니다.
당시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였고 영국의 법을 따랐던 나라였기에 자신이 찍고싶었던 영화를 마음대로 찍을 수 있었죠.
그렇게 문화를 위해 홍콩에 뭉친 사람들 덕분인지 1970년대부터 홍콩영화는 전성기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고 결국 1980년대 전성기를 찍게 됩니다.
할리우드에서 단역으로 출연하던 이소룡이 홍콩에서 찍은 용호투(1970년대작)이 대박이 나면서 홍콩식 액션 영화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소룡의 요절 때문인지 그 전성기가 순식간에 꺾이는 구간이 존재하지만 이후 성룡을 발굴해내면서 현란한 코믹 액션으로 다시금 부활하게 되었던 것이죠.
2. 홍콩영화의 최전성기
1980년대에 들어서며 홍콩영화는 최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사실 1980년대를 위한 투자라고 말하는 것이 맞을 거 같습니다.
- 해외 유학파들이 대거 홍콩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 TVB라는 방송사에서 신인 배우들을 발굴하고 홍콩을 대표하는 얼굴들로 키우는데 성공합니다
- 1970년 성룡의 홍콩 영화들을 보고 투자하는 투자사들이 많아지게 됩니다.
- 대만, 중국은 공산당의 지배를 받았고 한국 또한 독재정권의 시대였기에 유일하게 동아시아에서 자유롭게 영화를 찍을 수 있었던 곳은 홍콩과 일본 뿐이었습니다.
홍콩 영화 누아르의 대표 감독인 오우삼 감독과 <아비정전>, <중경삼림>으로 유명한 왕가위 감독 등 여러 위대한 감독들을 배출하며 이렇게 전성기가 오랫동안 유지가 될 줄 알았습니다.
3. 홍콩영화의 쇠퇴
하지만 홍콩영화는 쇠퇴의 길로 빠지게 됩니다.
한국에서 소개됐던 내용은 너무 비슷한 영화들이 많이 나와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것을 대표적으로 꼽았습니다.
하지만 성장과정을 보면 이유가 확연하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자유롭게 창작을 할 수 있는 곳이기에 성공했던 홍콩은 1989년 천안문 사태에 더불어 1997년 홍콩 반환으로 인한 중국 본토에 흡수가 되었고 그로 인한 작품의 검열화 그리고 중국 자본에 의해 홍콩 영화사들이 흡수되면서 완벽하게 쇠퇴의 길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결과로 홍콩의 여러 배우들, 감독들까지 국적을 바꾸거나 활동무대를 바꾸면서 홍콩 영화의 인프라가 전 세계로 퍼지는 현상으로 마무리되었고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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